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마약은 성매매와 더불어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로 인식된다. 자신에게 해가 될 뿐,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면 마리화나도 규제 대상에서 풀어야 한다는 논지다. 이런 주장 이면에는 경제적 논리가 도덕적 논리보다 앞선다. 즉 경제적 논리에 근거한 현실론이다. 마리화나 산업은 새로운 세원(稅源)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제적 이유에서 마리화나 합법화가 불가피하다는 지론을 편 대표적 인물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다. 그는 마약 규제가 수요를 전혀 규제하지 못하고 사회적 비용만 초래하는 낭비가 심한 정책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고 여기에 높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사용을 통제하는 것이 효율적 정책이라는 것이다.


2018년 새해 벽두부터 미국 사회는 대마초, 칸나비스, 해시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온 마리화나 합법화를 둘러싼 논쟁으로 다시 뜨겁다. 더욱이 마리화나가 중독성에 있어 니코틴이나 알코올보다 약하다는 주장이 점점 사회적으로 설득력을 얻는 추세다. 현재 50개 주 가운데 28개 주와 수도 워싱턴 DC의 경우, 의료용 마리화나는 합법이다. 2012년 콜로라도와 워싱턴 주에서 마리화나 사용이 합법화되면서 피우는 마리화나는 물론 먹을 수 있는 각종 마리화나 캔디와 쿠키 등이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1996년 캘리포니아 주는 의료용 대마초를 최초로 합법화하였고 금년 1월부터 기호용 마리화나의 판매 및 흡연을 합법화하였다. 이에 따라 의료용 및 기호용 마리화나 사용을 모두 합법화한 주는 기존 콜로라도, 워싱턴, 알래스카, 오리건 등 4개 주에서 총 8개 주로 늘어났다. 미국 전체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약 6400만 명이 대마초 완전 해방 지역에서 살고 있다.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주로 이주하거나 그곳에 정착하려는 젊은이들로 인해 소위 마리화나 난민들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미 서부와 동부 해안 지역을 최대 시장으로 두고 있는 마리화나 산업은 고속성장하고 있다.


201210억 달러 정도였던 미국 내 마리화나 관련 산업 매출이 2015년에는 35억 달러(4800억 원)로 육박하였다.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주가 늘어나면서 2014년에는 전년에 비해 70% 넘게 매출이 신장하였다. 마리화나 산업이 매년 30% 내외 성장해 2020년쯤이면 2015년의 네 배에 가까운 134억 달러(144000억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많은 기업들도 마리화나 시장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고 물밑에서 시장에 뛰어들기 위한 치밀한 전략을 짜고 있다. 마리화나 제품 개발뿐만 아니라 관련 서비스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마리화나를 주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앞다퉈 제작되고 앱을 통한 주문, 고객 상담, 배달 서비스도 성업 중이다.


미국 내 마리화나 합법화를 둘러싼 여러 논쟁을 지켜보면서 우려하는 것은 그것 자체보다 중독이 증폭되고 그것을 권하는 사회 병리 현상이다. 담배보다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이 그래도 낫다는 논리가 공론화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무너진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고 아프다. 마리화나가 헤로인이나 코카인은 물론이고 담배나 술, 심지어 카페인보다도 의존성과 금단성이 낮다는 미국약물중독연구소의 보고서를 들이밀면서 마리화나 합법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현실적으로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마리화나가 특별히 청소년의 기억력, 운동 능력, 심리적 요인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여러 보고서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마리화나를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그것의 주요 성분인 THC가 뇌의 수용체에 결합하여 화학작용을 일으켜 일상 시스템의 균형을 깨뜨리게 된다.


마리화나를 둘러싼 논쟁의 본질은 이런 의학적 주장이 아니다.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인간 영성에 있다. 물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황폐해진 인간의 정신과 영성이 문제다. 현대인들을 중독에 빠뜨리는 것들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알코올, 니코틴, 마약, 향정신성 약물 등을 비롯한 물질 중독과 도박, , 인터넷, 게임, 관계, 음식, 쇼핑, 일 등을 포함한 비물질 중독이 그런 것들이다. 현대 사회는 여러 다양한 것들에 중독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것들로 도처에 넘쳐나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병약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질이든 비물질이든 중독이 증폭하는 사회는 피폐해진 사회다. 중독은 그것을 유발하는 물질의 문제이기 전에 그것에 의존하려는 인간의 문제가 아닌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주체하지 못하여 여러 물질에 의존한다면 인간다움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을 위해 중독을 권하고 공공연히 합법화하는 사회는 이미 심각히 비인간화된 것이다. 중독을 권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면 영성 회복밖에 없다.


영성 회복은 중독 권하는 사회에서 교회가 되짚어 보아야 할 가장 본질적 사역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