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나교회
서머나(Smyrna) 교회는 이즈밀(Izmir)에 있다. 이 교회는 폴리갑(Polycarp)이 순교한 교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풀리갑은 안디옥 출신으로서 사도 요한의 제자이자 서머나교회의 감독으로 있다가 순교했다. 교회사가인 요세비우스(Eusebius)는 폴리갑의 순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머나의 사형 집정관은 나이 든폴리갑을 살려보려고 여러 번 회유했다. 먼저 황제(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llelius)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태도를(황제 섬김) 바꾸라고 명령한다. 폴리갑은 운동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나는 너희들의 신을 믿지 않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저주하기만 하면 자유를 주겠노라고 더욱 더 강요한다. 폴리갑은 “86년 동안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그는 나
를 한 번도 부인한 적이 없는데 나를 구원해 준 나의 왕 나의 주를 내가 어떻게 욕할 수 있겠는가?”라며 항의했다. 총독이 맹수에게 던져버리겠다고 협박하자 폴리갑은 “맹수들을 불러라”고 외친다. 그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안 총독은 화형으로 처형하겠다고 최후의 협박을 한다. 폴리갑은 “그 불은 잠시 타다 꺼지지만, 당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불이 있다. 즉 장차 임할 정의의 불과 영원한 형벌의 불, 그리고 불신자들을 위해 예비된 불이다. 왜 당신
은 주저하는가?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답변한다. 그때 운동장에 모인 무리들이 그를 화형에 처해야 한다고 소리친다. 총독은 폴리갑을 화형에 처할 것을 명령한다. 장작 더미 위에서 그는 마지막 기도를 올린다. 그의 기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랑하시는 나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을 알았고, 천사와 모든 권세를 가지신 아버지 앞에 선 이 시간 저를 순교에 합당한 자로 예정해 주시며, 인정해 주시고, 이로써 성령의 능력으로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소망하게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또한 이 몸을 향기로운 제물로 받아 주시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께 승리의 찬송을 드리오며,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영광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를 마치자 준비된 장작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이 폴리갑을 태우지 못하자 집행인은 군검으로 찔러 사형을 집행했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주님 품에 안겼다. 그대 폴리갑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고 그의 제자 이레네시우스가 빌립보교회에 전했다고 한다.

지금은 도시 주변에 폴리갑 순교기념교회가 있다. 도착해 보니 교회 대문이 잠겨 있고 손바닥만한 창구가 있어 출입자를 지키고 있다. 초인종이 있어 누르고 방문객이라고 말하자 문이 열렸다. 교회 안은 어두컴컴해서 불을 밝히니 천장과 벽에는 빈곳이 없을 정도로 성화가 가득 그려져 있다. 선악과나무 아래서 유혹을 받고 있는 하와와 노아의 홍수, 예수의 탄생으로부터 십자가상의 죽음, 그리고 부활까지 성경 전체를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즉, 만국어로 된 신구약성경인 셈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는 성화가 폴리갑의 순교 장면을 그린 성화였다.

서머나(예수 공동체)교회는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풀려나 잠시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이그나티우스(Ignatius) 감독이 로마로 끌려갈 때 요한의 제자 폴리갑을 만난 곳도 서머나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로 끌려가는 중에 드로아에서 세 통의 편지를 남겼다. 거기다 그는 교회에 대한 로마인들의 박해를 자세히 기록했다고 한다. 그 편지는 서머나교회와 폴리갑에게, 그리고 빌라델피아교회에도 보내졌다.

이그나티우스는 전부 일곱 통의 편지를 남겼다. 그리고 로마로 끌려간 이그나티우스는 원형 경기장(콜로세움)에서 사자의 먹이가 되어 순교했다. 이그나티우스나 폴리갑의 순교처럼, 성도들이 당한 박해는 표현하기에 너무 비참하다. 그럼에도 교회의 생명체는 끊이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이 교회는 프랑스 성도들이 1600년경에 건립하여 서머나교회에 헌정했다고 한다. 터키에서는 예배활동이 철저히 제한되므로 방문자들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관리인의 인상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전기세라도 아끼려는 듯 속히 불을 껐다.

빌라델비아교회 입구에 헌금함이 있어서 우리는 자유로이 헌금을 하고 나왔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사데에서 동남쪽으로 40킬로미터쯤 떨어진 알라세히르(Alasehir)에 있다. 이곳은 포도나무가 많기 때문에 포도주를 생산하여 교회들의 성찬예식에 쓰도록 일곱교회에 공급한 곳이다. 그래서 빌라델피아(‘형제의 사랑’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얻
었다고 한다. 계시록에서는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말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그로 인해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계 3:7-13)고 칭찬받았던 교회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포도주를 즐기고, 춤추며 놀기를 즐겨했다. 그들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섬겼다고 한다. 역사의 기록에는 앗달로스 2세(BC 159-138)가 도시를 건설했으며, 그의 아들은 그것을 저항없이 로마에 헌납했다.

우리가 찾은 빌라델비아교회는 6세기경에 건축했다는 안내문이 있으나 의심스럽고, 오히려 디오니소스 신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철조망으로 둘러친 입구에 ‘ST JENE CHURCH’(요한교회)라는 간판이 있어 반가웠다. 철조망 문은 잠겨 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사이로 사진을 찍는데 어느 부인이 오더니, 들어가려면 입장료
를 내라고 했다. 사진도 이미 찍은지라 밖에서만 보아도 충분하겠기에 우리는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그 지역에 왔다왔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