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건너가기 전에는 바사 왕 고레스(BC 538)가 마게도니아를 침공하기 위해 다다넬스(Dardanells) 바다를 건넜고, 알렉산더의 연합군대 35,000여 명의 병사도 이 바다를 건녔다. 이후 로마 기병대도 이 바다를 건너 예루살렘에서 이집트까지 정복했다. 그리고 1565년 봄, 슐탄 슐레이만은 무스타파 파샤에게 전함 3,000척과 병사 5만 명을 더해 멜
리데(Malta)를 침공하기 위해 이 바다를 통과한다. 그토록 유서 깊은 다다넬스 해협을 지금 우리가 건너가고 있다. 그리고 연락선은 10여 분만에 차나칼레에 도착했다.

우리가 새로 빌린 차는 11인승으로 듀얼 에어컨디션이 장착된 벤즈다. 우리 일행은 8명이어서 자리도 넉넉하다. 지도를 펼치면서 오늘은 앗소까지 가기로 했다. 하루의 기도당번을 세우고 뜨거운 기도를 담당케 했다. 기도 당번에게 모든 여정을 결정하는 특권을 주었다. 잠자리와 식사까지도 당번의 책임이다. 우리는트로이 목마가 있는 트로이에 도착했다. 사실 그곳은 우리의 일정에 그다지 중요한 곳은 아니었지만, 드로아로 가는 길목이요 앗소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잠시 들른 것이다.

트로이 성은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 에 나오는 방어성이었는데, 오늘날 그 옛 성터가 발견되었고, 지금도 발굴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트로이 목마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우리는 차를 속히 돌려 가보(Curpus)가 살았던 드로아(Troas)로 갔다. 알렉산더는 안티고누스에게 드로아를 재건, 축성케 하고, 자신은 계속해서 동방 정복의 길을 간다. 축성이 끝난 뒤에는 그 이름을 따 알렉산드리아 드로아(Alexandria Troas)로 불렀다. 드로아도 안내자가 없으면 찾기 힘든 곳, 트로이에서 해변 숲길을 따라 50여 킬로미터 남쪽으로 내려가니 “Alexandria Troas”라는 녹
슨 간판이 지나치기 쉬운 길가에 세워져 있다. 그 사잇길로 둘어가야 드로아의 유적을 볼 수 있지 큰길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성 안에는 상점과 목욕탕, 저잣거리에 이어 광장이 있다. 광장에 남아있는 아치문은 드로아의 위용이 어떠했는지 짐작게 한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돌무덤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드로아는 이방 선교의 출발점이 아닌가.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예수의 영(성령)에 이끌려 드로아로 왔다. “거기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건너갔다”(행 16:11)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 후 3차 여행 때 바울의 일행, 즉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행 20:4) 등이 먼저 드로아에 도착했다. 누가와 바울을 합쳐 9명의 선교 사절단이다. 그들 모두가 가보의 집에 한 주일씩이나 머물렀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 떡을 떼기 위해 모두 모여 송별모임을 갖게 된다. 그날 바울의 강론은 밤중까지 계속된다. 그때 3층 누각 정문에 걸터 앉아 말씀을 듣던 유두고(Eutycus)가 졸음을 못 이겨 떨어져 숨이 멎었다. 제자들은 염려하고 걱정하며 웅성거린다.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저에게 생명이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 하고 떠나니라”(행20: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