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는 마게도니아의 첫 성으로 바울이 이방 선교의 기지를 세운 매우 중요한 도시이다

빌립보(Philippi)는 필립 2세가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이다(BC360).
빌립보는 마게도니아의 첫 성으로 바울이 이방 선교의 기지를 세운 매우 중요한 도시이다. 따라서 바울 사도가 도착하기 전의 역사를 보면 이곳은 시저를 살해한 부루투스를 쫓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연합하여 부루투스 군대와 대결한 곳이다. 

이 싸움에서 패한 부루투수는 자살하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수는 로마를 동서로 나누어 지배하게 된다(BC 42) 옥타비아누스는 로마로 돌아오고, 안토니우스는 다소(Tarsus)에 총독부를 설치한 뒤 동부, 즉 동로마를 다스린다.

이후 안토니우스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이집트로 가게 된다. 그러자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를 로마의 반역자로 몰아세워 안토니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이집트로 출정한다(BC 31-30).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전투는 치열했다(악티움 전투). 안토니우스의 함대는 괴멸당하고 안토니우스만 살아 돌아왔으나, 결국 수도 알렉산드리아마저 옥타비아누스에게 점령당하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이로써 비로소 옥타비아누스 1인 통치하의 로마 대제국이 되어 그는 초대 황제로 등극한다(BC 27). 옥타비아누스가 바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눅 2:1)다.

그 때쯤 예수께서 탄생하시고 역사는 BC(Before Christ)에서 AD(Anno Domini)로 기록된다. 로마 제국은 빌립보 주민들에게 특별한 혜택(무세 지역)과 시민권을 허락한다. 이로 인해 빌립보는 경제적으로 급성장하여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가 된다. 자유를 얻기 위한 유랑민들에게 빌립보는 드림랜드였던 것이다. 두아디라성의 루디아도 이곳에 와서 자주 장사를 하여 부를 쌓았다.

어느 날 강가에 모여 있는 여인들 중에는 루디아라는 여인도 있었다. 루디아는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경건한 신앙인이었다. 기도할 만한 곳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려는 낯선 이들의 말에 마음이 열려 그녀는 나그네들의 말을 더욱 청종하게 된다. 그 나그네들이 곧 바울 일행이다. 루디아는 사도들에게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고 청하여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는다. 하나님은 루디아를 예비하시고 이방 선교의 대 후원자로 삼으신 것이다(행 16:11-40).

강가(기가투스)를 찾았으나 강은 없고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개울만 있었다. 개울가 암반 위에 무슨 글인가가 새겨져 있지만 읽을 수 없고 희미하다. 또 이 냇가에서 셰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 셰례탕을 만들고, 모여서 예배할 수 있는 계단도 만들어 놓았다. 거기서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1972년에 독일 성도들이 지었다는 루디아 기념교회가 있다. 문이 열려 있어 가만히 들어가 보니 교회 내부는 크지 않지만 창에는 스테인글라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바울과 실라, 디모데 그리고 루디아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교회를 나와 네압볼리로 가는 큰 길엔 작은 모디아 호텔이 있어 들어가 보니 그 이름이 루디아였다. 이왕이면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루디아 호텔에 머무는 게 좋겠다고 하여 우리는 그곳에 숙소를 정했다. 성수기가 되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이 없어 조용했다. 호텔 측은 우리에게 넓은 공간을 마음껏 쓰도록 배려해 주었다.

다음날 하늘은 티없이 맑고 높았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 빌립보 성의 유적지가 있다고 했다. 오늘은 우리가 첫 방문객이다. 사람이 없어 돌아보는 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눈에 보기로 했다. 그 대신 바울이 갇혀 있었다는 지하 감옥으로 가 보았으나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고 초라했다. 거기에 바울과 실라가 갇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빌립보라는 이 큰 도시, 더군다나 유랑하던 사람들이 몰려와 자리잡고 살았던 이 도시가 이만한 감옥으로 감당이 될까? 200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지하 감옥이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의심스럽지만, 바울이 갇혔다고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뭉클해진다.

지진이 일어나고, 땅이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며, 모든 사람들의 매인 것이 다 벗어져 간수가 자결하려 할 때 바울이 소리질렀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마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그러자 간수는 등불을 들고 들어가 바울을 보고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하고 묻는다. 그때 그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로 그 바울의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우리 여행자 일행은 두 손을 들고 소리 높여 찬양했다.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지하 감옥 문은 철창으로 가려져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화려했던 빌립보 성은 무너지고, 로마 제
국이 이슬람으로 넘어가고, 그 역사는 이렇게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대로를 따라 돌을 깎아 박은 로마로 가는 길(Via Egnatia)이 있다. 이 길을 따라 복음이 마게도니아와 로마와 그리고 세계로 전해진 것이다. 어제 넘던 고개를 넘어 네압볼리(Neapolis)로 왔다. 아름다운 항구 도시 네압볼리는 빌립보 성의 외항으로서 소아시아와 마게도니아의 무역의 중심지다. 사도 바울은 두 번이나 이 항구를 통해 드로아를 왕래했다. 지금은 이 도시와 항구를 카발라(Kavala)라고 부른다.

사진설명: 빌립보의 유적 아고라(시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