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상명 목사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lee_sangmyoung.jpg유사 복음과 잡탕 영성이 더 위험하다!
현대의 다원화 된 세상 속에서 우리가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다원화 사회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종교에도 적용된다. ‘종교다원’은 이 시대의 중요한 현상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960년대 미국과 유럽에 동양 종교와 사상이 유입되면서 기독교가 주도하는 시대는 서서히 물러가고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라는 말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개신교, 가톨릭, 유대교밖에 모르던 서구문화에 다양한 종교 전통을 지닌 아시아 인구가 유입되면서 종교 다원 사회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시아 인구의 유입보다 종교 다원 현상을 더욱 가속시킨 것은, 전방위로 뻗어 나가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여러 다양한 종교 전통의 전 세계적 공유에 있다. 그러나 종교 다원 현상을 하나의 피할 수 없는 대세로 여겨, 여러 다른 종교로부터 기독교 복음이 서 있는 독특성, 유일성, 계시성을 버리는 것은 기독교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반(反)복음적 행위다. 이러한 급진적 이념 운동을 우리는 ‘종교다원주의’라 한다. 종교다원주의란, 종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절대 종교란 있을 수 없고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사상이고 이념이다.
종교 다원 시대 속에서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자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다원화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맞닥뜨린 주요한 현안은 그리스도인 됨에 대한 문제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규정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가? 이러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과제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시도한 ‘제1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게 하라’는 신앙의 본질 회복에 관한 것이었다. 20세기 초, 에큐메니칼(ecumenical), 즉 교회일치 운동가에 의하여 시도된 소위 ‘제2의 종교개혁’은 ‘교회로 하여금 교회 되게 하라’는 교회의 본질 회복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3의 종교개혁은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회복’과 관련될 것이다.
종교개혁을 촉발했던 95개 논제를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내건 이후 500여 년이 흘렀다. 지난 500여 년 동안 기독교는 서구 문화와 궤적을 같이하면서 그것의 큰 줄기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1세기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 기독교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거센 도전 앞에서 개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지, 아니면 힘없이 무너질지는 21세기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 기독교가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복음인데 유사 복음이고, 기독교 영성을 표방한 듯한데 잡탕인 영성이 더욱 위험한 법이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부단한 개혁’이라 한다면, 내리막길에 있을 때도 복음의 정신을 견지하면서 개혁해 나간다면, 우리는 오르막길로 겸손히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도 부침(浮沈), 즉 성하고 쇠할 때가 있듯이 기독교 역사에도 부침이 있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복음 전파의 사명은 기독교의 본질에 속한다.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면서 복음전파를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일부 자유적인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입장은 성서적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타 종교와의 대화의 수준을 넘어 혼합 내지는 기독교적 알짬을 버리는 행위는 바울이 저주한 ‘다른 복음’이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 1:7). 1세기 갈라디아교회를 향한 바울의 외침이 기독교적 정체성을 잃은 이도저도 아닌 잡탕 영성에 물들지 않도록 21세기 현대 교회를 흔들어 일깨우는 각성제가 되길 바랄 뿐이다.